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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1일 목요일

안철수, 1년만에 급부상 ‘치밀한 플랜’ 있었나

2012 대선주자 탐구|안철수
벤처사업가에서 정치인 부상까지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영자(CEO), 교수로 일하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많이 만난 편이죠. 정보기술(IT) 노동자 등 젊은 사람들과 교류했고, 정부의 각종 위원회와 기업 사외이사 등을 지내면서 연배가 높은 분들과도 넓은 네트워크를 갖게 됐습니다. 세계 최상위권 철강회사인 포스코에서 40대로는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을 맡아 60~70대인 다른 이사들과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교수로서)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20~30대와도 교감했고요. 비교적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있지 않나 감히 생각합니다.”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사표’나 다름없는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한 얘기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엘리트답게, 만 50살의 안 후보는 사회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직업 4개를 성공적으로 섭렵했다. 지지자들은 그의 삶의 궤적에서 ‘성공과 성취’와 함께 ‘기부와 나눔, 희생과 양보’를 동시에 주목한다. 한국사회에서 좀처럼 양립할 수 없었던 가치들이다. 지지자들은 대한민국 사회도 안 후보의 이미지처럼 ‘순결하고 정직하면서도’,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길 기대한다.

다른 시각도 있다. ‘대중이 만들어낸 신기루’, ‘서민의 삶을 모르는 도덕적 상류층’, ‘치밀한 기획으로 등장한 제3후보’ 등 부정적 의견이 존재한다. 성공스토리를 담은 몇 권의 책과 청년들을 상대로 한 강연, 그리고 예능프로그램 두 편으로 만들어진 지지율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 이르다’는 유보 의견도 있다. 그가 치열한 공방과 검증이 오가는 ‘정치판’에 이제 막 등판한 만큼, 이리저리 뜯어볼 게 아직 많다는 뜻이다.


굴곡없는 부잣집 수재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큰 ‘엄친아’
과학·공학도 꿈꾸면서 의대 진학
안정적 직업 포기 ‘컴 백신’ 두각


■ 엘리트 의사에서 ‘벤처기업 창업’까지 안 후보의 부친은 경남 밀양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안 후보를 낳았다. 부친은 전역 후 안 후보가 두 살 때 부산 범천동에 병원을 열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책과 대선 캠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글을 깨친 초등학교 1학년 이후부터는 활자중독 증세를 보이며 등·하교 길에서도 책을 읽었고 중학교 때 웬만한 한국소설은 다 읽었다”며 “그때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주고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릴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기계를 만지는 공학도가 되고 싶었다”며 “보통 남학생들에 비해 손이 작아 조립, 분해 등 섬세한 공정을 필요로 하는 일에 재주가 뛰어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고3 때 스스로 의대 진학을 택했고, 16등의 성적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며 결국 의사가 됐다. 그는 공대가 아닌 의대에 진학한 이유에 대해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서”라고 털어놨다. 적어도 대학 때까지 안 후보의 삶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수재들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2살 때부터 총탄에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후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대학 때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제적을 당했던 문재인 후보에 비하면 그의 삶 전반을 규정할 만한 강렬한 경험이 없었던 셈이다.

안 후보는 왜 안정된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컴퓨터 백신’ 전문가가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 그는 텔레비전이나 자신의 책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의 의료봉사활동 경험을 강조한 바 있다. 80학번인 안 후보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의대 본과 2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서울 구로동과 무의촌 등에 봉사활동하러 다녔다. 그는 그곳에서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며, ‘소설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봤다고 한다. 어릴 때 접한 책들과 당시의 경험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의학 실험에 쓰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서부터다. 일찌감치 컴퓨터 언어에 능통했던 안 후보는 직접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런 내용이 당시 컴퓨터 전문 잡지에 소개되면서 그에겐 도와달라는 요청이 밀려들었다. 이때부터 7년동안 그는 새벽에 일어나 백신을 개발하다가 병원으로 출근해 의학실험을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내가 받은 일부라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는 게 그가 ‘안철수 연구소’를 창업한 이유였다.


벤처 성공신화 뒤 그림자
“경영자 10년 업적 과대포장”
정치행보 뒤 안랩 주가 8배
기부 밝혔지만 최대 수혜자로
2001년이후 5년 기부 3193만원
나눔 강조 언행으로 보면 ‘초라’


■ 성공한 벤처신화와 몇 가지 의문들 컴퓨터 백신회사를 차려 기업가로 변신한 이후 안 후보는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안랩’을 안착시키며 벤처업계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1999년 30만대 이상의 컴퓨터가 피해를 입었던 체르노빌(CIH)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역설적으로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소프트웨어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고전하던 회사도 흑자로 돌아섰다. 회사는 2004년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300억원의 가장 높은 매출 및 수익을 올렸다. 이듬해인 2005년, 그는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성과를 낸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일각에선 회사 경영자로서 일했던 10년이 과대포장됐다고 보기도 한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그의 책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에서 “안 후보는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7년 동안 개인에게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배포한 것처럼 말하지만, 당시 대부분이 전화로 피시통신을 하던 시절이어서 유료로 배포하려고 해도 그게 불가능했다”며 “그때는 이용자들이 백신뿐 아니라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유료라는 인식도 없었고, 안랩은 (이후) 일본 시장에서도 개인에게는 무료 백신 정책을 썼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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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가 국내 백신 시장 독립을 위해 1997년 미국 맥아피사의 1천만달러 인수 제의를 거부했다는 일화에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백신 무료배포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사례는 초·중·고 교과서에도 실렸다. 하지만 황 소장은 이에 대해서도 “지난 8월 공개된 1997년 맥아피사 보도자료를 보면, 안랩과 맥아피가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물건을 판매하는 합작회사를 만들기로 계약을 맺은 바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처음부터 거절한 게 아니고 합작회사까지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봐서, 안 원장의 인수제의 거부가 정말 100% ‘컴퓨터 보안주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두 회사의 엇갈린 이해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도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 “안 후보가 자서전에 적었을 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에피소드인데, 여러 교과서에 실려 마치 확실한 사실처럼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는 그의 책에서 “맥아피의 목표는 한국 유일의 백신업체를 없애고 시장을 통째로 장악하는 것이었다”며 “끈질긴 매각제의를 뿌리치기 위해 합작법인이라는 역제의를 냈는데, 이런 제의를 탐탁치 않게 여긴 맥아피 쪽이 영업부문 제휴를 들고 나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그마저도 맥아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가 평소 나눔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그가 경영했던 회사는 나눔에 인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안 후보가 대표이사로 일했던 2001~2005년 사이 안랩의 매출 총액은 1496억원, 순이익은 261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안랩이 사회공헌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은 5년동안 3183만원으로, 순이익 대비 0.12% 매출액 대비 0.02%에 그쳤다.


검증 필요한 정치역량
1년도 안돼 대선후보 급부상
‘치밀한 플랜 있었나’ 논란
몇권의 책·TV예능 2편이 전부
재산·납세 등 검중 분야 많아


■ 험난한 ‘정치의 산’, 넘을 수 있을까?안 후보는 2005년 유학을 떠나 3년 뒤인 2008년에 귀국해 카이스트 교수로 변신했다. 이때부터 ‘청춘콘서트’, ‘무릎팍도사’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갔다. 지난해 말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파격적인 양보를 하고, 올해 초 자신의 안랩 지분 절반(1500억 상당)을 기부하며 대중들에게 확실히 자신을 각인시켰다. 신문 정치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그가 유력 대선주자가 되기까지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선 ‘청춘콘서트 때부터 세밀하게 진행해 온 대선 플랜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단기간에 정치인으로 부상한 탓에 그는 다른 후보들보다 검증받아야 할 분야가 많다. 재산과 납세 문제만 하더라도 공직선거나 공직자 재산신고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세부 내용이 공개된 바 없다.

안 후보는 자신의 안랩 주식 절반을 기부했고, 대통령이 되면 나머지 절반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다. 남은 주식의 가치도 지난 8일 안랩의 종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1140억원대다.

주식을 제외한 개인 재산을 추정해보면, 우선 안 후보가 전세를 살고 있다고 밝힌 서울 용산구 주상복합 아파트는 전세가가 12억원 정도다. 또 안 후보가 지난 11년간 안랩의 최대 주주로 받은 배당금이 지금껏 117억여원, 2005년부터 6년간 포스코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받은 연봉과 스톡옵션 등으로 벌어들인 돈도 7억8000만원에 이른다. 최근까지 64만부가 팔린 책 <안철수의 생각> 인세 수입도 8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와 서울대에서 받은 부부의 급여를 제외하더라도 안 후보의 재산은 최소한 130억~140억원대로 추정된다. 박근혜 후보의 재산이 21억8000만원, 문재인 후보의 재산이 10억8000만원으로 신고된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대중에게 각인된 좋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의 구체적인 행보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가 자신의 정치비전을 밝힌 <안철수의 생각>을 1만3000원으로 책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 그런 사례다. 출판전문가인 박기봉씨(비봉출판사 대표)씨는 최근 펴낸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에서 “책의 원가와 출판사 이익 등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마진율 200% 수준인 8000원 정도가 공정한 가격”이라며 “수십만권이 팔릴 게 뻔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길 바라는 지지자와 독자들에게 5000원의 바가지를 씌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언론의 대서특필로 엄청난 ‘외부경제’ 효과를 누리면서도, 그런 효과를 조금이라도 독자들에게 나눠주려는 ‘배려’도 없이 저자와 출판사가 최소 수십억원대의 초과이익을 누렸다”고 꼬집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영세상인 보호’ 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인데도, 역설적으로 발간 직후 베스트셀러를 집계하는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만 공급돼 동네서점들의 항의를 받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안 후보가 사실상의 정치 행보를 시작한 이후 안랩의 주가가 폭등했고, 그 혜택을 안 후보가 가장 크게 누리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안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 소문이 돌기 전인 8월 초 안랩의 주가는 2만원 대 초반이었다. 안 후보의 출마 전망이 나오면서 안랩 주가가 이상 급등했고, 안 후보가 주식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올해 초 주가는 16만원이 넘었다. 5개월 동안 무려 800% 이상 폭등한 것이다. 안 원장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도 7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로 뛰었고, 보유 주식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발표는 곧바로 ‘1500억원 기부’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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